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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피스보트 7.20-24] 쪽빛 청춘을 염색하다, '물드리네'를 다녀와서
    사람살리는 교육/대안 교육 2011. 7. 29. 12:58

    쪽빛 청춘을 염색하다, ‘물드리네’


    # 생각하는대로 사는 삶의 공간을 찾아서

      자연과의 조화로운 삶을 살았던 스콧니어링의 말은 삶에 대해 조금이라도 고민을 해 본 청년들에겐 익숙하다. “생각하는대로 살지 못하면 사는대로 생각하게 된다.”

      제주시 한경면 낙천리에서 제주피스보트 참가자 20, 30대 청년 45여명과 함께 스콧니어링의 삶과 닮은 그런 사람들을 만났다. 낙천리 노인회관에서 제주도의 넉살좋은 현무암 돌담을 10분 남짓 돌고 돌아 도착한 물드리네의 주인들이 바로 그들이다. 물드리네의 김미선(45세)대표와 언니 장선자(50세)씨, 동생 허김지영(40세)씨.

      물드리네의 입구는 소소했다. 대문도 없고, 강아지(물콤) 두 마리가 반기는 입구에서 작업장이 어딜까 의아함이 생길 정도였다. 그러나 입구를 지나 우편으로 돌면 오른편엔 넓은 창작공간, 왼편엔 아홉굿(연못) 중 하나인 새물이 자리한 제주도문화유산이 숨쉬는 공간이 펼쳐진다. 그런 제주의 자연과 인간의 삶의 현장을 연결짓는 마당은 3년간 기른 푸른 잔디로 덧칠되어 있고, 그 잔디 끝에는 육체의 고단함을 잠시 자연에 맡길 수 있는 정자와 나무의자가 놓여 있다.

    # 시작은 미약했으나

      그들의 이유있는 동거의 시작은 의외로 단순했다고 한다. 제주시의 한 여성단체에서 언니, 동생으로 친하게 지내던 20대 시절을 보내고 난 후 매년 만나고 헤어질 때마다 나눴던, “친구야, 나중에 우리 꼭 같이 살자.”라는 이 한마디는 결국 인생의 절반을 함께 하게 하는 씨앗이 되었다.


      그들이 천연염색을 시작했던 이유도 간단하다. 처음부터 천연염색을 잘 알았던 것도 아니고, 염색을 하고자 스펙을 쌓아왔던 것도 아니다. 그저 마음자리가 편안한 일, 그러나 돈도 되는 그런 일, 그리고 여성이 모여서 할 만한 일을 찾다보니 염색이 눈에 띄였고, 그렇게 5~6평 되는 창고를 개조해 시작한 일이 2007년도에는 제주도 민족예술인총연합의 창작창고짓기 프로그램에 선정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은 40여명에게 물드리네를 강의할 수 있고, 3명이 염색작업을 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작업실을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작업실에는 20명은 족히 앉을 수 있는 넓직한 책상 2개와 창문 곳곳에 걸려있는 별모양, 선모양, 자갈모양 등의 천연염색 수건들, 그리고 수세시설과 염색을 위한 통들, 고무장갑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염색의 과정은 그렇게 만만하지가 않았다. 감즙, 추자 등 일상에서 구하기 쉬운 염색재료를 찾아다니는 과정에서부터 염색료를 만들고, 염색모양을 연구하고, 천을 염색물에 담구고 씻어내는 일련의 과정은 흡사 생명의 탄생과 소멸이 갖는 생애사의 과정처럼 여겨였다. 집안 곳곳에 장식된 천연염색체들의 나풀거림은 창조자의 손틈이 얼마나 거칠어져 있을지 반증해주는 듯 보였다.

    # 마을사람 마음을 물드리는 일의 어려움

    김미선대표의 물드리네의 사연과 강의를 듣던 중, 한 참가자가 물었다.
    “이렇게 시골에서 사는 것 중 가장 큰 어려움은 어떤 것인가요?”
    별고민없이 김미선대표는 답했다.

    “시골의 텃새는 아주 심해요. 수백년간 이어져 내려 온 시골의 공유유산이 있는데 이민자가 그 유산을 공유하기는 어려운 거죠. 그래서 사실 마음의 각오도 필요해요.”

      물드리네가 2년간의 탐방 끝에 결정한 낙천리였지만, 정작 정착하기 가장 어려웠던 이유는 시골의 텃새였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을 지켜온 자들과 내 마음에 합당하여 찾은 이주자들과의 소통은 그렇게 원활하지 못했다고 했다. 아니 사실대로 말하면 갈등이 심했다고 했다. ‘여자들끼리 왜?’라는 질문을 주민들은 가지고 있었을 것이고, ‘우리가 왜 꼭 그런 걸 증명해야하지?’라는 질문을 이주자들은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랬는지 2톤무게의 보일러 설치를 도와달라고 손을 내밀기 전까지는 본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내부적으로 해결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의 삶의 어려움은 비단 외부에만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함께 살기 위해 공동체를 꾸렸던 자매들 집안엔 라이프스타일의 차이로 매일 싸움이 가득했다고 했다. 조용해야만 잠이 오는 언니와 음악소리 등의 소리가 있어야 잠이 오는 동생과의 삶은 겪어보지 않아도 눈에 보이는 듯하다.

    “뒤에 버티고 있는 공동체 멤버들과 그 공동체를 바라보고 있는 또 다른 공동체에게 우리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꼭 보여주고 싶었어요.”

      숨막혀 죽고 싶지 않아 선택한 삶의 과정에 비록 우여곡절은 있지만, 그래도 이 삶이 맞다는 것을 삶으로 증명하고 싶었다고 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미선대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골에서 사는 것에 대한 비전을 이렇게 나눴다.

    “만약 시골에서 살고 싶다면, 어떻게 본래 거주자와의 관계를 극복할 것인지 마음의 준비를 하세요. 그리고 그런 일이 있을 것을 미리 받아드리세요.”

      매우 현실적인 대답이었지만, 그들에겐 이러한 현실을 받아들이기 위해 마음의 벽을 허물고 내 속에 타인과의 조화의 공간을 넓히는 일이 인생의 가장 큰 비전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천을 물들이고, 결국에는 사람의 마음까지 자연의 평화로움으로 물들일 수 있다는 것이 어쩌면 그들의 가장 큰 비전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런지 김대표는 지금의 삶이 매우 만족스러우며 자연의 시간과 궤를 함께하는 지금 이 순간들이 매우 행복하다고 하였다.

      20대에 무엇을 하고 싶은지 고민도 없었고, 하고 싶은 일을 찾지도 못했다던 김대표의 지금의 삶의 모습이 내 이력서에 무엇인가 물을 들여야만 살아남을 것 같아 안달하고 조급해하는 20대 청년들의 마음에 이유있는 삶이 무엇인지 물들여 놓았다. 청아한 쪽빛으로 물들여지기 위해서는 물을 들인 후에 반드시 깨끗한 물로 씻어내야만 하는 염색의 과정이 물들임으로 채우려고만 하는 우리네 인생사에 이제는 물로 씻어 내버려야하는 때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10년, 20년 후에 이 행사에 참가했던 지금의 20대 청년들이 보다 자연스러운 쪽빛으로 물들여진 삶을 살아가게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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