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이냐 내용이냐.
1.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맨 처음엔 공문(기안)작성 때문에 대개 첫 충격을 받는다. 공문 앞에서는 누구든지 어리버리 이등병이 되고 만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 뿐. 3-6개월이 지나면 내부기안, 지출결의, 우편 발송 등 기안은 정말 별 것 아니다.
2. 캘리그래피(손글씨)를 하다보면 처음 붓이 어색한 몇일을 보내고 나면 내 맘대로 글씨를 써내려갈 수 있다는 것에 신이 난다. 몇 주만에 마치 전문가가 되어 버린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붓질이 별 것 아닌 것 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캘리그래피는 정형화를 싫어한다고 각인되어진다.
3. 공문작성이 익숙해지고 다시 비슷한 사업이 반복될 때 고민되는 것이 있다. 기안 형식은 지난 번 애써 작성한 것을 활용하면 되는 데 이제 내용은 무엇으로 채우나...업무의 형식과 시스템이 무엇인지 알게되면 그 때부터 고민되는 것은 콘텐츠이다, 내용이다.
4. 어눌하지만 주변에 아직 많지 않아서 그런지 사람들이 손글씨를 써주면 참 좋아한다. 그러나 손글씨를 해보면 느끼게 되는 것은 가면 갈 수록 참 어렵다는 것이다. 필압조정, 속도조절, 결구, 장법 등 쉬운 것이 하나도 없다. 내 창의력이나 아이디어는 금새 표현할 도구를 상실한 것 마냥 서예 기본기가 부족함을 절감하게 된다.
5. 직장생활할 때는 형식무지공포를 벗어나자마자 내용무지공포에 빠졌었는데, 손글씨를 할 때는 시간이 갈수록 형식무지공포가 크다. 세상엔 내용이 숙성될수록 맛이 나는 일이 있고, 형식이 숙성될 수록 맛이 나는 일이 있나보다. 물론 진정한 고수에겐 이 두가지 맛이 버무려져 나오겠지만 아직 갈길이 먼 나에겐 내용이 먼저냐 형식이 먼저냐를 두고 이 정도 결론 밖에 내리지 못했다. 그때 그때 달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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