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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IPC 수업, Exploring Denmark 'The Voices of the Cities' 덴마크 홈리스를 만나다.사람살리는 교육/IPC_국제시민대학 이야기 2016. 10. 5. 23:00
덴마크같은 사회복지국가에서 홈리스라니?
10월 2일 일요일, 오늘은 Exploring Denmark 수업에서 Copenhagen의 홈리스 아저씨 Chopper(54세)를 만나기로 한 날이다. 유창한 영어로 우리들을 안내해 주셨던 초퍼 아저씨는 30년 이상 경력의 홈리스 아저씨다. 'The Voices of the Cities'는 덴마크 홈리스를 위한 NGO인데 이 기관의 80%이상은 홈리스 가이드 투어에 의해 충당된다고 한다. 그들은 자립을 위해 그들이 왜 홈리스가 되어야 했는지, 그들의 삶은 어땠는지, 그리고 어떻게 더 나은 삶을 가꾸어 가고 있는지 진솔하게 나누고 있다. 덴마크의 홈리스는 2015년 현재 6,138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그들은 신체적 정신적 문제나 마약, 알콜 중독 같은 이유들로 인해 거리에서의 삶을 택했다.
Ørstedsparken(공원) 입구에서 우리는 초퍼 아저씨를 만났다. 키는 작았지만, 멋들어진 가죽재킷에 긴머리를 뒤로 넘기고 한 손엔 커피 한잔(Caffe Rosso) 들 줄 아는 분위기 있는 아저씨였다. 니콜라이 쌤이 먼저 악수를 청하는 것을 보고 나도 바로 용기를 내어 초퍼 아저씨와 악수를 나눴다. 손이 조금 차갑긴 했지만 내 고정관념과는 달리 냄새가 나지는 않았다. 그렇다. 아저씨는 매우 단정하셨다. 여느 홈리스 아저씨와는 다르게 삶의 모든 짐이 아닌 단촐한 가방 몇 개를 장착해 놓은, 거의 새 것으로 보이는 자전거를 옆에 세워 놓고 우리를 환영해 주셨다. 자전거는 지자체에서 지원해주셔서 500DKK에 구입하셨다고 했다.
공원으로 우리를 안내하면서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이 공원의 역사부터 시작해서, 자신의 삶의 이야기들을 대본을 다 정리하고 완벽하게 외운 배우처럼 진솔하게 풀어 놓으셨다.
"저는 헝가리가 고향입니다. 어머니가 파출부로 일했는데 그 집에서 강간을 당했어요. 그래서 제가 태어났죠. 그리고 저희는 버림을 받았어요. 당시 덴마크는 헝가리 난민을 받아 준 유일한 나라였기 때문에 이리로 오게 됐어요. 어떤 아이도 부모를 선택할 수 없어요. 그래도 저는 제 어머니를 정말 싫어합니다. "
그는 덴마크 정부도 처음엔 홈리스를 스웨덴 방어에 활용하는 등 군사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이용하기도 했다는 것과, 현재 Kommune(지자체 단위)은 홈리스 숫자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과, 홈리스를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그들을 꺼리고 있다고 했다.
"저는 20년 이상 술을 마시지 않고 있어요. 일단 너무 많이 마시는 것이 싫고, 술을 마시면 하루를 늦게 시작하게 되고 그렇게 인생을 망치고 싶지 않아요."
그는 자신의 인생철학이 나름대로 분명해 보였다. 대개 마약이나, 술 중독 그리고 신체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홈리스가 되지만, 본인에게는 군인들이 갖는 트라우마와 같은 정신질환이 있다고 했다. 다리도 불편하셨는데 정신적, 육체적으로 삶을 이겨 나가는 것이 대단해 보였다.
"집에서는 어느 누구도 저를 필요로 하지 않아요. 그러나 저는 거리에서 기능하는 것이 있어요. 저는 집이 잘 맞지 않을 뿐이예요."
홈리스도 다 같은 홈리스가 아니며, 집이 안 맞아서, 내부 공간에서 사는 것이 절대 안 맞아서 거리에서 생존해야만 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그는 강조했다. 왜 그렇게도 삶의 평안을 가져다 줄지도 모를 안정된 공간이 싫어지셨을까...
"덴마크에는 7천에서 9천명 정도의 홈리스가 있어요. 이 공원에는 40명에서 60명 정도의 홈리스가 있어요. 저는 이 공원에서 예전에는 불도 지피고 그렇게 잠도 잤지만, 지금은 그렇게 할 수 없어요. 1400년부터 있었던 이 공원이 저기 위의 시멘트 건물들로 인해 점점 줄어들고 있어요. 여기가 제가 잠자는 곳 이예요. 저는 학교에서, 경찰서에서, 이 장소에서, 그리고 제 자신과 싸우면서 생존(struggle)하고 있어요."
그는 이 말을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24시간 매일 추운 날씨와, 사람들의 시선과, 그리고 자기 자신과 싸우며 생을 이어간다는 것이 얼마나 지독히 힘든 일일까.
초퍼 아저씨 자전거와 잠자는 장소
예전엔 불도 지피셨다는 곳
"겨울에는 어떻게 여기서 지내시나요?"
"겨울에는 신문을 더 깔고, 옷도 더 깔고 눕고 신문을 덮고 옷을 또 덮어요."
마치 별 것 없다는 듯이 얘기했지만, 매일 매일의 생존투쟁이 얼마나 많은 아픔을 동반하게 될지 느낄 수 있었다.
"다른 홈리스들과 함께 잡지를 만들고 알리는 일을 한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그들을 만났나요?"
"처음에는 저녁에 했지만, 지금은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주요 역에서 밥을 나누고 있어요. 거기에서 사람들을 만나요. 소개도 하고 그러죠."
매일 자신의 삶의 물건들을 물건 보관소(60DKK/day)에 맡기고, 잡지도 만들어서 공유도 하고, 영홈리스(18세~29세)들 교육도 시킨다는 초퍼 아저씨가 '홈리스 사회적 기업가'처럼 느껴졌다. 영어를 어떻게 그렇게 잘하냐고 물으니 본인은 영어, 헝가리어, 독일어, 집시 언어(이런게 있댄다), 슬라브 쪽 언어 등 다양한 언어를 구사할 줄 아는 인텔리라고 하신다. 그렇다 홈리스도 인텔리 일 수도 있다. 사회적 기업가, 인텔리, 그리고 단정한 홈리스 초퍼 아저씨에게 참 많은 것을 배웠다. 나의 생각이 만들어 놓은 성벽을 매일 매일 넘는 기분이랄까.
초퍼 아저씨에게 단체 사진을 찍고 싶다고 했더니 흔쾌히 수락해 주셨다. 미소까지 덤으로.
초퍼 아저씨가 홈리스를 위해 발행하는 잡지. 올해 20주년이 되었단다.
남미 숙녀들
알고보니 잡지 모델이셨다.
오른쪽이 초퍼 아저씨
왼쪽이 초퍼 아저씨
그가 사랑하는 F.C.코펜하겐. 의미가 남다르다고 한다. 귀여운 길냥이까지.
그는 이제 피곤하다며 말을 마쳤다. 1시간 20분 정도 얘기해주셨으니 생각보다 많이 해 주신거다.
안데르센과 키에르케고르 만나러 이동
그가 말한 점점 줄어드는 공원
Luffe 아저씨의 삶의 현장과 이야기를 듣고 온 그룹2.
※ 영어로 의사소통한 관계로 수치나 년도에서 차이가 발생할 수도 있지만, 주요 의미에는 큰 영향을 줄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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